‘수신료 수납’ 언제 또 바뀔지 몰라
아파트를 ‘먹거리’로 여겨선 안 돼

국민의 70% 이상이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어 정부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정책을 내세우면 공동주택 관리에도 영향이 미친다. TV 수신료가 그런 사례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까지 관리현장의 혼란을 일으킨 큰 이슈 중 하나가 TV 수신료 분리징수 도입이었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처음 논의될 때 공동주택 관리 전문가들도 관리현장과 큰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영향은 매우 컸고 이 와중에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중간에 끼어 엉뚱한 비난을 듣고 엉뚱한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공동주택 관리 관련 단체와 관계부처, 한전과 KBS의 협상이 이어졌고 수신료 문제가 불식되나 싶더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KBS의 수신료 통합징수 의무화를 위한 방송법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가결됐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도입된 지 1년 6개월, 시행된 지 6개월 만이다. 

야권에서는 분리징수가 졸속으로 처리됐고 수신료 별도 고지에 따른 불편을 해소한다고 법 개정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 여권은 국민 과반이 분리징수에 찬성하고 있다며 맞섰다. 방송법 개정안이 과방위에서 통과됐어도 개정법에 반영되기까지 절차가 남아 있어 실제 시행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에 의도치 않게 공동주택 관리사무소가 희생양이 됐다는 점이다. 관리현장은 “뜬금없는 분리징수에 KBS와 매일 지지고 볶아서 간신히 업무가 정상화됐는데 또 다시 이게 무슨 일이냐”며 황당해했다. 관리 관계자들은 “개정법이 시행될 때까지 납부대행을 하지 말자”거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행업무는 이어가자”는 의견을 주고받으며 앞으로의 업무처리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수신료 이슈는 오래전부터 여야가 공수를 교대하며 벌여온 정치적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거대 야당 주도로 통합부과가 되더라도 앞으로 정치 지형이 바뀌거나 KBS를 누구 편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분리징수 논란이 또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관리사무소는 또 수신료로 인한 혼란을 겪고 관리업계는 도돌이표 협상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먹거리로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전기차 충전시설과 태양광 설비를 예로 들며 “정부가 환경 정책을 세우니 신생 업체들이 최대 먹거리인 공동주택에 우르르 난입한 후 폐업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비난했다. 그 피해는 입주민과 직원의 몫이라는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 

정부가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2025년 1월까지 주차면수의 2~5%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것도 충전시설이 안전한지 검증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빨리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기차에 의한 아파트 주차장 화재 이후 설치 기한을 1년 연장한 것은 그나마 신속한 조치였지만 애초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지 못했던 것을 시인한 셈이다.

공동주택 관리현장은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특수한 분야다. 그런데 아파트를 일반 대형 건축물로만 인식해 각종 관리 의무를 지우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공동주택 분야에서는 이를 ‘타법에 의한 의무화’라며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외부에서 ‘아파트에는 돈이 많고 여러 입주민이 공동 부담하니 표시가 안 날 것’이라고 쉽게 여기지만 입주민은 관리비에 민감하고 △관리사무소 인력 감소 추세여서 중요한 의무라도 추가로 떠맡기 어려우며 △심한 경우 아파트와 무관한 의무까지 지우려는 움직임도 잦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공동주택 관리정책 실무책임자는 이런 현실에 대해 “행정기관과 정치권에서 관리사무소의 핵심 역할을 인지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평했다. 국회와 여러 정부 부처, 아파트를 상대로 시장을 확대하고자 하는 여러 업계의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