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칼럼 관리현장의 개인정보보호와 법적 책임 주요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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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형필의 판례탐구]

이번에 다룰 판결은 2023년 9월 22일 선고돼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의 개인정보 보호의무와 관련한 주요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본 사건은 서울 동대문구 소재 B아파트의 관리사무소장이었던 피고인이 입주민 19세대의 인적사항이 포함된 문서를 입주자대표회의 회의자료로 제공함으로써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안입니다.
피고인은 2021년 한 해 동안 B아파트의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던 중, 2021년 10월 18일 개최된 입대의에서 ‘직무정지된 동대표의 입대의 참석 및 의결 금지와 기지급된 출석수당 및 직무수당 환수의 건’이라는 제목의 안건 제안서를 회의자료에 첨부해 동대표 9인에게 열람하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해당 제안서에 C 등 입주민 19세대의 이름과 동호수가 명시돼 있었고, 그 내용이 외부에 노출되면서 이들이 개인정보 침해를 이유로 고소에 이르게 된 점입니다. 피고인은 입대의의 의결사항에 안건 제안자의 인적사항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공동주택관리법령의 규정을 근거로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본 사안에서 가장 큰 법적 쟁점은 피고인이 제공한 안건 제안서에 포함된 인적사항이 공동주택관리법령에 따라 당연히 공개돼야 하는 정보인지 여부입니다. 피고인은 시행령 제14조 제2항 제1호에 따라 안건의 제안자는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에 대해 명확히 반박했습니다.
법원은 해당 조항이 적용되는 범위가 한정돼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시행령 제14조 제2항 제1호는 입대의가 제안의 주체가 돼 전체 입주자등을 대상으로 관리규약 개정안을 제안하고 표결에 부치는 경우에 해당하는 조항으로 이 사건과 같이 일부 입주민이 제안 주체며 관리규약 개정이 아닌 특정 입주자에 대한 제재안건은 그 조항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제안자들의 인적사항을 포함한 문서를 회의자료로 제공한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법원은 피고인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하면서도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정상을 상세히 언급했습니다. 우선 피고인의 행위가 일부 제한된 범위에서 이뤄졌고, 불법적 이득을 취하려 하거나 고의적으로 피해를 입히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점, 전과가 없다는 점은 유리한 사유로 참작됐습니다. 반면 소장으로서 개인정보 보호에 있어 높은 책임이 요구된다는 점, 해당 안건이 내부고발의 성격을 띠고 있어 제안자의 익명성이 더욱 보호돼야 했던 점, 피고인이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며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은 불리한 정상으로 작용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동일한 내용의 문서를 유포한 관리부장 E 또한 벌금 5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법원이 언급하며 형평을 고려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유사한 행위에 대한 처벌의 일관성과 형사정책적 균형을 도모하려는 법원의 의지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 사건은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 관리사무소장 등 관리자들이 입주민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를 환기시키는 사례입니다. 그동안 일부 관리현장에서는 입주민 명부, 동호수, 차량번호, 연락처 등이 내부자료라는 이유로 가볍게 다뤄져 왔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은 분명히 업무상 취득한 개인정보의 유출이나 부당한 제공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동주택의 의사결정 구조상, 입주민의 안건 제안이나 이의 제기는 내부고발적 성격을 지닐 수 있어 더욱 민감합니다. 이런 경우 입주민들이 보복이나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제안자의 익명성을 보호하는 것이 관리의 투명성과 민주성 제고에 이바지한다는 점을 관리주체들은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공동주택관리법령이 정한 정보공개 범위와 개인정보보호법이 정한 비공개 원칙은 충돌할 경우 그 목적과 적용대상, 공개의 필요성 등을 신중히 해석해야 합니다. 이 사건은 그러한 해석의 예시로서, 일부 관리규정이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공개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피고인이 단순히 관행적 업무수행 과정에서 무심코 처리한 문건이었을지라도 그 안에 포함된 정보가 입주민의 인권과 직결되는 민감한 개인정보였던 만큼,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향후 관리사무소 및 입대의는 개인정보의 수집, 보관, 제공, 파기 전 과정에서 법령에 따른 엄격한 절차를 마련하고, 실무자들에게 이를 철저히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이는 입주민의 권익 보호와 더불어 공동주택 관리의 신뢰를 높이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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